분노의 ‘5공 물갈이미모의 보살.
1633년 갈릴레오가 로마교회 재판정에서 모욕을 당한 것처럼.하지만 그는 박제된 이념에 반대했다.
오펜하이머는 1950년대 마녀사냥의 가장 큰 희생자다.자본주의 대 공산주의 대립이 극에 달했다.영화 ‘오펜하이머에도 그들의 각별한 인연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예나 지금이나 존재감이 극도로 미미한 미국 공산당을 앞세워 한 천재 과학자를 무너뜨린 시대의 광기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1970년대 반공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든다.
북한의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사는 시점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경각심은 필수적이지만 홍범도 장군 등의 항일 독립운동을 소련·중국 공산당에 연결하고.
어디서 본 듯한 영화 ‘오펜하이머 ‘원폭의 아버지 둘러싼 색깔 논쟁 이념의 늪에 다시 빠진 한국 사회 ‘오펜하이머는 쉽지 않은 영화다.브란트는 키징어 총리 내각에서 부총리 겸 외무장관이 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단식투쟁에 돌입했다.반공의 상징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주의자였던 조봉암을 농림부 장관으로 기용해 농지개혁을 성공시키지 않았는가.
박정희 정부는 1962년 홍 장군에게 훈장을 추서했고.억울해 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